나는 가능하면 저녁 식사 약속을 피하는 편이다.
특히 날짜까지 미리 정해놓는 약속은 더더욱 부담스럽다.
이유는 단순하다. 저녁은 내게 하루를 정리하고 리듬을 회복하는 시간이다. 아침 루틴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에게 저녁의 잦은 약속은 다음 날의 컨디션까지 흔들 수 있다.
물론 예외는 있다.
한 달에 한 번 있는 세인 회식, 그리고 비슷한 주기의 배드민턴 회식은 즐겁게 참석한다. 젊은 사람들과 어울리며 현장의 감각을 배우고, 새로운 정보와 생각을 접하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이런 만남은 에너지를 빼앗기보다 오히려 채워준다.
반면 특별한 이슈 없이 관성처럼 이어지는 동창 모임은 조금 다르다. 추억은 소중하지만, 관계 유지를 위해 의무적으로 참석하는 자리는 내게 피로로 다가올 때가 많다.
그렇다고 사람 만나는 걸 싫어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내가 좋아하는 만남은 조금 더 자연스럽다.
비가 오는 날, 하늘이 흐린 날, 혹은 특별한 이유 없이 그냥 “오늘 한잔할까?” 싶은 날이 있다. 그럴 때는 부담 없이 전화할 수 있는 사람들과 당일 약속을 잡는다. 미리 일정표에 적어 넣는 만남이 아니라, 그날의 기분과 날씨, 마음의 결이 맞을 때 가볍게 만나는 관계다.
이런 만남에는 의무감이 없다. 형식도 없다. 서로 편할 때 만나고, 편하게 헤어진다.
결국 내가 피하는 것은 사람이 아니라 억지로 유지해야 하는 관계의 방식이다.
나이가 들수록 더 분명해진다.
인간관계는 숫자가 아니라 질이라는 것을.
많은 사람과 형식적으로 연결되는 것보다,
비 오는 날 문득 떠올라 편하게 전화할 수 있는 몇 사람이 있는 삶이 더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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