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를 흔히 삼다도(三多島) 라고 부른다. 돌이 많고, 여자가 많고, 바람이 많다는 뜻이다. 그 가운데 제주를 가장 제주답게 만드는 것은 아마도 바람일 것이다.
제주는 사방이 바다로 둘러싸인 섬이다. 계절을 가리지 않고 바람이 분다. 때로는 사람을 상쾌하게 만들지만, 때로는 삶의 방식을 바꾸어 놓을 만큼 강하게 몰아친다.
제주의 전통 초가집을 보면 지붕 위에 굵은 새끼줄이 촘촘히 얽혀 있다. 강풍에 지붕이 날아가지 않도록 하기 위한 선조들의 지혜다. 밭 주변에 쌓인 검은 돌담 역시 단순한 경계가 아니다. 바람을 막고 농작물을 보호하기 위한 생활의 산물이다.
제주 사람들은 바람을 정복하려 하지 않았다. 대신 바람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웠다. 자연을 거스르기보다 자연에 적응하는 길을 선택한 것이다.
나는 제주에 살면서 이 점이 참 인상적이었다.
처음 제주에 왔을 때는 바람이 불편했다. 우산은 쉽게 뒤집혔고, 계획했던 일정도 바람 때문에 변경되곤 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제주의 소나무와 팽나무를 보면 대부분 한쪽 방향으로 기울어져 있다. 강한 바람 때문이지만, 바로 그 모습이 제주 자연의 특징이 되었다. 나무들은 바람과 싸우지 않았다. 몸을 낮추고 방향을 바꾸며 살아남았다.
문득 사람의 삶도 그렇다는 생각이 들었다.
살다 보면 예상하지 못한 바람이 분다. 사업이 흔들릴 때도 있고, 건강이 예전 같지 않을 때도 있다. 가까웠던 사람과 멀어지는 순간도 찾아온다.
젊은 시절의 나는 모든 문제를 정면으로 돌파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이가 들수록 다른 사실을 알게 되었다. 세상에는 맞서야 하는 문제도 있지만, 받아들여야 하는 현실도 있다는 것이다.
독일의 철학자 아르투어 쇼펜하우어는 인간의 삶에서 고통을 피할 수 없다고 말했다. 또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것을 담담히 받아들여야 한다고 했다.
제주의 바람은 그 철학을 말없이 보여준다.
바람을 없앨 수는 없다.
하지만 바람을 대하는 태도는 선택할 수 있다.
제주 사람들은 수백 년 동안 바람을 원망하기보다 바람 속에서 살아가는 방법을 찾았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제주만의 문화와 지혜를 만들어 냈다.
나 역시 제주에서 그 사실을 배웠다.
인생은 바람 없는 날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다. 바람이 불어도 걸어갈 수 있는 힘을 기르는 것이다.
오늘도 제주에는 바람이 분다.
그리고 나는 그 바람을 맞으며 다시 한번 생각한다.
강한 사람은 바람을 이기는 사람이 아니라, 바람과 함께 걸어가는 사람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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