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신화에는 수많은 신들이 등장한다.
그 가운데 가장 인간적이고, 가장 강인한 인물을 꼽으라면 나는 자청비를 선택할 것이다.
자청비는 제주 신화 「세경본풀이」의 주인공이다.
오늘날 농경의 여신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녀의 이야기는 단순한 신화가 아니다.
그것은 사랑과 선택, 그리고 자신의 삶을 스스로 개척한 한 인간의 이야기다.
자청비는 어린 시절 문도령을 만나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두 사람의 사랑은 순탄하지 않았다.
문도령은 하늘나라로 돌아가고, 자청비는 홀로 남겨진다.
여기서 대부분의 이야기라면 슬픔 속에서 끝났을 것이다.
하지만 자청비는 달랐다.
그녀는 운명을 탓하지 않았다.
하늘을 원망하지도 않았다.
대신 직접 길을 나섰다.
문도령을 찾아 나섰고, 수많은 고난과 시련을 스스로 헤쳐 나갔다.
결국 그녀는 사랑을 되찾고, 자신의 힘으로 운명을 바꾸어 낸다.
나는 이 신화가 제주 여성들의 삶을 그대로 담고 있다고 생각한다.
제주의 여성들은 오랫동안 강했다.
바다에 나가 물질을 했던 해녀들도 그랬고, 척박한 땅에서 가정을 지켰던 어머니들도 그랬다.
누군가가 삶을 바꾸어 주기를 기다리지 않았다.
스스로 움직였다.
자청비 역시 그런 제주인의 정신을 상징한다.
많은 사람들은 사랑을 운명이라고 말한다.
만날 사람은 만나게 되어 있고, 떠날 사람은 떠난다고 말한다.
어느 정도 맞는 말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인생은 운명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선택이 있어야 한다.
좋은 관계도 선택이고,
배움도 선택이고,
도전도 선택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결과만 기다리는 사람에게 인생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쇼펜하우어는 인간은 의지하는 존재라고 말했다.
삶은 결국 무엇을 원하는가, 그리고 그것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의 문제다.
자청비는 그 사실을 보여 준다.
그녀는 기다리는 사람이 아니었다.
행동하는 사람이었다.
나 역시 살아오며 많은 선택의 순간을 만났다.
중국으로 떠나는 선택도 그랬고,
제주에 정착한 선택도 그랬다.
돌아보면 인생을 바꾼 것은 운명적인 사건보다 작은 선택들이었다.
그 선택들이 쌓여 오늘의 나를 만들었다.
그래서 나는 자청비 신화를 좋아한다.
이 신화는 말한다.
인생은 기다리는 사람의 것이 아니라,
선택하고 행동하는 사람의 것이라고.
그리고 사랑 역시 마찬가지라고.
운명이 아니라 선택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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