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바람을 특별하게 생각했다.
바람은 씨앗을 날려 보내고,
바다는 물고기를 불러오며,
계절의 변화를 알렸다.
그래서 제주 사람들은 바람에도 신이 있다고 믿었다.
그 신이 바로 영등할망이다.
영등할망은 음력 2월 초하루에 제주에 들어와 보름 동안 머물다가 다시 바다를 건너 떠난다고 전해진다.
제주 사람들은 영등굿을 열어 풍어와 풍년을 기원했다.
그리고 영등할망이 떠나는 날에는 아쉬워하면서도 기쁜 마음으로 배웅했다.
흥미로운 것은 아무도 영등할망을 붙잡으려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왜일까?
제주 사람들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계절은 붙잡을 수 없고,
시간은 멈출 수 없으며,
사람 역시 영원히 곁에 머물 수 없다는 사실을.
나는 이 이야기가 인생과 참 닮았다고 생각한다.
젊은 시절에는 모든 것을 붙잡고 싶었다.
좋은 인연도,
젊음도,
기회도,
성공도.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깨닫게 된다.
인생은 소유가 아니라 흐름이라는 것을.
내가 중국에서 보낸 20년의 시간도 그랬다.
그 시절은 끝날 것 같지 않았다.
하지만 결국 떠나야 했다.
상하이도,
베이징도,
수많은 사람들도
이제는 추억 속에 있다.
한때는 아쉬웠다.
그러나 지금 돌아보면 그 떠남이 있었기에 새로운 삶이 시작되었다.
중국을 떠났기에 제주를 만났고,
제주를 만났기에 지금의 나도 존재한다.
영등할망은 매년 떠난다.
하지만 다시 돌아온다.
제주 사람들은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떠남을 끝으로 보지 않았다.
순환의 일부로 받아들였다.
고대 스토아 철학자들은 말했다.
"자연의 질서를 거스르지 말라."
봄이 오면 꽃이 피고,
가을이 오면 낙엽이 떨어진다.
그것은 상실이 아니라 자연의 이치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사람은 만나고,
사랑하고,
헤어지고,
다시 새로운 인연을 만난다.
그 흐름을 받아들일 때 마음은 조금 더 자유로워진다.
나는 나이가 들수록 내려놓음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포기는 아니다.
자연스러운 흐름을 인정하는 것이다.
영등할망은 오늘도 바람을 타고 제주를 찾는다.
그리고 다시 떠난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생각한다.
인생의 지혜는 더 많이 붙잡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때가 되면 웃으며 보내줄 줄 아는 데 있다고.
떠남은 끝이 아니다.
새로운 시작을 위한 또 하나의 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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